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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5세기 말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을 잇는 항로를 개척한 이탈리아 출신 항해가이자 탐험가이다. 오늘날에는 신항로 개척의 공로와 함께 원주민 착취·학살 책임 때문에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인물로 여겨진다.[ko.wikipedia]
기본 인물 정보
- 1451년경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출생했고, 주로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활동했다.[store.kyobobook.co]
- 1506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사망했으며, 생애 대부분을 신대륙 항해와 그 결과를 둘러싼 분쟁 속에서 보냈다.[blog.naver]
주요 항해와 업적
- 1492년 스페인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지원을 받아 서쪽 항로로 인도에 이르는 계획을 실행했다.[ko.wikipedia]
- 같은 해 바하마 제도의 한 섬(산살바도르로 명명)에 상륙하고, 쿠바·히스파니올라 등 카리브 해 여러 섬을 탐험해 이후 유럽–아메리카 간 지속적 교류의 출발점을 만들었다.[namu]
신대륙 ‘발견’과 한계
- 당시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달한 곳을 아시아(인도 부근)라고 믿었고, 죽을 때까지 새로운 대륙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.[worldkorean]
- 그럼에도 그의 항해는 유럽인에게 미지의 대륙 존재와 서쪽 항로 가능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, 이후 정복·식민지화의 물꼬를 텄다.[namu]
원주민에 대한 폭력과 논쟁
- 히스파니올라 등지에서 식민지 총독으로 있으면서 토지를 분할하고 원주민을 금 채굴·농업에 강제 동원하는 제도를 운영했다.[blog.naver]
- 금 채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원주민에게 고문·신체 절단을 가하고, 어린이까지 노예로 파는 등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는 기록 때문에 현대에는 학살자·식민 지배 가해자로 비판받는다.[ko.wikipedia]
오늘날의 재평가
- 과거에는 ‘신대륙 발견 영웅’ 이미지가 강했지만, 최근에는 식민지 폭력의 상징으로서 동상 철거·기념일 명칭 변경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.[ko.wikipedia]
- 따라서 콜럼버스는 대항해시대를 연 상징적 인물이면서 동시에 제국주의·원주민 학살의 어두운 면을 함께 이해해야 할 역사적 인물로 다루어진다.[namu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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